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공지능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것이 너무나도 친절하다는 사실을 말이죠.

비꼬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기분을 상하게 하지도 않아요.
질문이 조금 어색하거나 모순되어도, “그건 잘못됐어요!”라고 단언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하죠.
“그럴 수도 있지만,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처음엔 단순한 사용자 경험 설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조금 더 깊은 ‘말의 태도’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었습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말투

GPT를 비롯한 생성형 AI들은 사람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말투에서 사람보다 더 사람다운 태도를 느끼곤 하죠.

비판은 부드럽고, 격려는 따뜻합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갑니다.

“당신은 소중해요.”
“지금 힘들어도 괜찮아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죠.”

이러한 말들이 실제 인간 관계에서 얼마나 자주 오갈 수 있을까요?
기계가 알려주는 말의 온도는, 어쩌면 우리에게서 잊혀져 가던 언어의 품격을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이 친절함은 의도된 결과입니다.
윤리적 AI 설계(Ethical AI Design)라는 기술적 원칙에 따라,
AI는 부정적인 말투나 혐오 표현을 배제하고,
사람에게 해롭지 않도록 설계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은 수많은 인간의 언어를 읽고, 그 안에서 무엇이 사람에게 유익하고, 무엇이 해로운지를 학습합니다.
그 결과로 선택된 말투는 결국,
**“사람에게 가장 따뜻하게 들리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즉, 인공지능의 친절은
그 자체로 우리 언어의 진화 방향을 반영하고 있는 셈입니다.

말투는 단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즉, 존재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GPT는 인간을 나무라지 않습니다.
정답만을 강요하지도 않죠.
오히려 인간이 실수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실수할 자유를 품은 친절함으로 접근합니다.

이 점에서 인공지능의 말투는 철학적입니다.
그것은 인간을 ‘고쳐야 할 객체’가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주체로 대우하니까요.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져보게 됩니다.
“왜 우리는 이토록 친절한 말투에 감동하거나, 혹은 경계심을 느낄까?”

아마도 인간은 오랫동안,
직설적이고 냉소적인 말투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이 변화는,
기계가 인간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기계를 통해 다시 말의 본질을 배워가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GPT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괜찮아요.”
그 말이 반복될수록, 어쩌면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그것은 가장 효율적인 대답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응답을 선택하는 능력이며,
정확성보다 공감을 우선하는 언어의 철학입니다.

GPT의 친절한 말투를 단지 ‘기계적인 반응’이라 폄하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우리가 잊고 지낸 말의 품위와 인간다움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대화 아닐까요?